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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자락길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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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자락은 소백산자락길 탐방로 중 유일하게 기차역이 통과하는 코스로 열차를 이용한 탐방객이 걷기에 좋은 곳이다.
조선시대 정감록의 십승지 중 1승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오감만족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게 만드는 2자락의 매력은 풍부한 먹을거리, 볼거리, 체험거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인삼재배지로 유명한 풍기에서 맛깔스런 음식, 인삼재배체험, 사과따기체험 등의 다양한 농촌체험, 전국에서 으뜸가는 유황온천인 풍기온천체험까지 다양한 팔색조 매력을 가진 2자락에서 오감만족 여행을 즐겨보세요.  

코스정보

삼가주차장 → 금계호(삼가저수지) → 금선정 → 정감록촌(임실) → 풍기소방서 → 풍기온천 → 소백산역(15.6km, 4시간 20분) 

교통편

○ 교통편(문의전화 054-633-0011~13)
 

- 삼가동 : 영주시내버스터미널 26번 버스 06:10~18:00 1일/8회
- 소백산역(희방사행 중간 하차) : 영주시내버스터미널 25번 버스 06:15~17:00 1일/13회
- 풍기온천 : 영주시내버스터미널 27번 버스 06:20~19:35 1일/20회

 

반짝반짝 아름다운 금계바위의 슬픈 전설
 

금계호 북쪽 샘밭골 마을 뒷골짜기에 닭 모양과 비슷한 두 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를 가리켜 ‘닭산’ 즉 ‘금계바위’라 부른다. 옛날 이 바위의 가운데 닭의 눈이 되는 부분에는 큼직한 보석까지 박혀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나그네가 가파른 바위를 올라가 박힌 보석을 빼려 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져 나그네는 바위에 깔려 숨지고 보석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 후 마을은 점차 가난해지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명승지 금선정


풍기읍 금계2동에 가면  금선정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황준량선생이 휴식을 하던곳이다. 황준량이란 어떤사람인가?
신령현감 시절, 백성들의 굶주림을 자신의 일같이 여겨 보살피며, 전의 현감이 관의 재물을 많이 축낸 것을 절약 긴축으로 충당하여 그 문건을 불살라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단양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거의 쓰러진 상태의 고을을 다시 일으키고자 임금에게 진폐소를 올렸는데, 4천 8백여 자의 명문장으로 임금을 감동시켰다.

그의 마지막 임지는 성주이다. 전임자가 세운 염봉서원을 증축하고, 문묘를 증수하는가 하면 교관을 두어 지방의 제자들을 가려서 가르치고, 매달 강회(講會)를 열어 성적에 따라 상벌을 베풀었다.

그는 효성과 우애가 두터워 언제나 물건이 생기면 먼저 어버이께 드리고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알면 늘 힘껏 도왔다. 그래서 20여 년의 벼슬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었을 때, 염습에 쓸만한 천이 없었고, 널에 채울 옷가지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주변의 금선계곡도 한해 수천명이 오는관광지로써
 수백년된 아름드리 소나무와 계곡이 일품이다.

 

 

▲ 역사 속에 나타난 금계촌의 기록들 = 풍기군지에 의하면 ‘군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등항성(登降城, 도솔봉 아래로 추정)이 있고 고려 태조가 이곳에 오른지 7일만에 백제의 항복문서가 도달했다’는 기록과 ‘태조의 영정이 지금도 용천사에 있는데 단정하고 엄숙하면서도 온화하고 영명하여 그것을 바라보면 호감이 가는 참다운 제왕의 모습이다. 유학자 임제광(풍기군수, 1522-1525)이 본군에 사당을 짓고 그 영정을 봉안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화재가 나서 영정은 온전했지만 사당은 복구하지 못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어 용천동에 있는 용천사에 왕건의 영정이 봉안돼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감록 십승지지로 주목받고 있는 금계촌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지형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금계촌 임실에 와서 무쇠 말뚝을 박아 혈을 질렀다고 전하고 있다. 이 또한 풍수지리와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이여송이 조선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두려워서 혈을 질렀다는 것이다.

 

     
▲ 정감록 후손 박상우씨 
     
▲ 정감록 후손 차동근씨  

▲ 십승지 후손들이 사는 마을 = 마을 원로들은 “금계촌은 정감록촌이라고도 하는데 부계밭과 임실에 사는 사람 중 열에 여덟 아홉은 정감록을 믿고 찾아 온 사람들이다. 이북지역에서 온 사람 중에는 평안도가 제일 많고 황해도, 함경도 순”이라면서 “이 곳 토착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박상우(77)씨는 “증조부께서 이북에서 내려와 풍기읍에서 한의원을 했는데 아마 1890년경으로 추정된다”며 “1960년대 박용만 국회의원이 증조부의 종손자였다”고 했다.

 

부친이 8살 때 평안북도에서 내려왔다는 차동근(75)씨는 “조부 때 정감록마을 찾아 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듯 안마기에 앉은 백명현(78)씨는 “우리 선조들도 북한에서 왔는데 처음엔 강원도로 왔다가 그곳에서 다시 풍기 금계촌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마을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이전에 온 사람들은 금계촌에 많이 정착했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에 온 사람들은 욱금동과 삼가동에 많이 정착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이날 경로당에서 만난 세 분 모두 정감록을 믿고 찾아온 2,3세대들로 금계촌의 옛 이야기를 들려 줄 마지막 세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